[여의도풍향계] 대통령 지지율, 숫자에 불과?…총선 영향 따져보니
[앵커]
4·15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락세에 있다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하고 있고 여당 지지층에선 '문 대통령 효과'가 막강합니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고 여당의 승리를 장담할 순 없다는 게 역대 총선 결과입니다.
과거 사례를 박초롱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2004년 17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
네 번의 총선에서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의 총선 성적표가 나란히 함께 움직인 것은 단 한 차례입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바닥을 쳤는데도 여당은 승리했고, 40%대로 탄탄했을 때 패배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의 상수가 아닌 변수라는 얘깁니다.
먼저, 가장 최근 치러진 2016년 20대 총선으로 가보겠습니다.
총선 날인 4월 13일을 눈 앞에 둔 시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였지만 40%대 지지율을 안정되게 유지했습니다.
30%대 후반이었던 여당 새누리당 지지율보다 높아 청와대 출신들이 저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 이른바 '박심'을 내세우며 총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예비후보들은 명함과 홍보물에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실으며 앞다퉈 인연을 부각했습니다.
지금 상황과 비슷합니다.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어 180석 이상을 차지할 거란 정치권 전망,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민주당이 123석을 얻어 원내 1당을 차지했습니다.
텃밭인 호남을 '안철수 열풍'을 등에 업은 국민의당에 내주고도 수도권에서 압승해 이뤄낸 승리였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은 승리를 자신한 나머지 내부 다툼에 골몰했습니다.
진짜 친박을 일컫는 '진박' 인사들이 줄줄이 공천받았고, 이재오·유승민 의원 등은 공천 심사 결과에 반발해 탈당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만들어라, 너희들이 힘 합쳐서. 그렇게 해서 국회의원 만들어 준거 아닙니까? 그런데 지난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대구·경북의원들 뭐했냐 이거에요."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입니다."
결국 김무성 대표가 공천장에 당 대표 직인 찍기를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공천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막고자 했던 탈당과 당내 분열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당의 공천 행위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의 오만, '옥새 파동'으로 상징되는 공천 내홍에 보수층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역풍을 부른 공천 논란은 박근혜 정권 몰락의 시발점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고 6개월 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땐 총선이 두 차례 치러졌습니다.
대선 직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50%대 초반이었습니다.
대선에서 이 전 대통령 득표율은 49%로, 26%를 얻은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당 후보에 압승했는데, 이런 흐름이 총선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18대 총선 때도 여당 내에서 공천 파동이 있었습니다.
친이명박계가 공천을 주도한 가운데, 친박계가 대거 공천 학살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천 결과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서청원, 홍사덕 등 공천에 탈락한 친박계 의원들이 뛰쳐나와 '친박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 첫해 지지율 프리미엄은 강력했습니다.
잡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153석의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통합민주당은 81석에 그쳤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은 양상이 달랐습니다.
이 전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뚝 떨어진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정당 지지율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지자, 민주통합당은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유지했습니다.
여권 총선 승리에는 '선거의 여왕'이라 불린 박근혜 효과가 톡톡히 작용했습니다.
지지율이 낮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박근혜 당시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워 쇄신을 단행했습니다.
"생각과 사람과 이름까지 바꾸게 된다면 우리 당은 완전 새로운 당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총선에 전진 배치된 '미래권력'이 정권 심판론을 꺾는 효과를 발휘한 겁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의 키워드는 '탄핵 역풍'이었습니다.
임기 2년 차,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율은 1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총선을 한 달 앞두고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면서 탄핵이 총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랜만의 외출입니다. 매일 마음을 비운다고 명상을 하는데, 명상을 하다 보면 자꾸 명상이 기도가 됩니다. 모두 투표하세요."
야권의 무리한 노 전 대통령 탄핵 시도가 역풍을 맞아 야당의 정권 심판론과 응징론은 힘을 잃었습니다.
한나라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152석의 과반 의석을 얻었습니다.
총선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이변이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집권 4년 차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0%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대 여권은 강고한 친문 지지층 결집에 승부를 거는듯합니다.
민주당이 예비후보 적합도 여론조사를 하면, 후보 이력에 문 대통령 이름만 들어가도 적합도 수치가 훌쩍 올...